2023년 2월 9일, 1일차
Air Premia 전세기편,
인천공항 게이트에서 40분을 더 대기했으나
비행기에 탄 상태에서 무려 두 시간 가까이 대기하다보니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승객을 태운 상태에서 정비관계로 비행기 이륙이 지연된다니 아무리 저가항공이라도 좀 너무 한다...
어쨋든 참을 인자 세번 쓰고 ......
결국 당초 이륙시간인 11시 대비 두 시간 늦게 13:20분 이륙..
두 번의 기내식을 먹고......
오래된 영화를 뒤적이다가 가져간 아이패드로 책을 보며 11시간의 비행시간 끝에
현지 앙카라공항에 19:10분 도착...
식사메뉴는 단촐했으나 그래도 값싸게 가는 여행이니 식사를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 !!!!
기내 음료수나 주류는 모두 유료....
앙카라국제공항은 인천공항에 비해 규모가 작아보였다.
공항건물 출입구에서 보안검사를 하다보니 생각없이 출구를 나갔다가는 들어올 때 또 보안검사를 받아야 하니 함부로 담배피거나 바람쐰다고 여권없이 그냥 공항건물 외부로 나갔다가는 낭패볼 수 있다.
현지 공항에서 33명의 가이드 찰리 Charlie 팀이 모여 버스로 Connect Thermal Hotel 로 이동 (약 40분 소요)
20:00시 호텔 도착하여 방배정받고 곧바로 저녁식사 후 방으로 들어가 짐 풀고 온천욕하고 일찍 취침
(23:00시까지 목욕가능, 단 수영장은 20시 Close)
말이 온천욕이지 철분냄새가 강한 따뜻한 물 수준, 그래도 따뜻한 물에 입욕하고 피로룰 풀어 숙면 유도
2월 10일(금), 2일차
03:30분 기상, 04:30 조식, 05:20 출발
여행준비하면서 앞서서 터키 패키지여행한 사람들의 SNS에서도 봤지만, 터키가 한국과 6시간 늦은 시차이므로 전날 아무리 피곤하고 잠을 못잤어도 새벽 3시(한국시간 아침 9시)만 되면 저절로 잠이깨서 모닝콜이 따로 필요없었다.
그래도 워낙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온 탓에 호텔에서 말안해도 모닝 Wake-up Call을 넣어준다..
아직 어두운 밤인가봐 !!!!
노래 가사처럼 어두운 새벽시간에 여행을 시작하며
철문 닫힌 한국공원 및 6.25 참전용사 위령탑 앞에서 얼른 기념촬영을 하고
가이드의 성화에 쫓기듯 버스타고 가면서 튀르키예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Mustafa Kemal Atatürk)의 묘를 힐끔 보면서 얼른 사진 찍고 지나갔다. (아래 사진)
- 한국관광객이 같은 날 16대의 버스에 타고 동일한 코스를 관광하니, 누가 먼저 가느냐에 따라 화장실과 식당에서 대기와 서빙 시간이 차이나고 연이어 관광시간도 지장 받는다고..
06:30분 휴게소 들러 휴식
터키는 운전기사 보호법이 있어서 두 시간내에 한 번 차를 세우면 15분을 무조건 쉬어야 하고, 다음 번 정차는 30분, 또 그다음 번 정차시엔 45분을 쉬어야 한단다. 위반시엔 벌금....
그러다보니 가이드가 가능한 버스가 휴게소 들를 때 소변을 보고, 운행 중간에 갑자기 차를 세우지 않기를 당부했다. 한 번 차를 세우면 그 만큼 여행시간이 짧아지니까....
07:50~08:20 투즈괼 소금호수 방문 및 기념 사진
이른 아침에 날씨도 흐려 제대로 된 풍경을 볼 수 없었다.
그냥 우리가 여기 왔었다는 증명 사진 몇 장 부랴부랴 찍고 ..... 차에 탑승
08:20~10:00 카파도키아로 이동
이동하면서 가이드의 튀르키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10:00~10:40 데린쿠유 (깊은 우물이란 뜻) 지하도시 관람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 8층까지 굴을 파고 숨어 살았던 지하 동굴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름은 터키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으로, 환기구 역할을 하는 직경 1m 규모의 구멍이 도시를 수직으로 관통하고 있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2천년 간 그리스계 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그리스어 지명은 말라코피 (Μαλακοπή)였다.
전성기는 동로마 제국 시대로 동로마인들이 아랍의 심한 간섭과 박해를 받게 되자, 9세기경에 일부가 이곳으로 도망쳐와 굴을 파고 숨어 살게 되었다고 한다.
데린쿠유는 깊이 80m, 8층이나 되는 규모다. 환풍구와 우물, 수조, 마구간, 방, 공용 공간, 무덤 등이 완비됐으며 안에서만 열 수 있는 무게 450㎏의 돌문으로 침입을 막는다. 각 층은 서로 왕래할 수 있지만 독립적이다. 지상으로 나오는 출입구는 600개 이상이지만 대부분 꽁꽁 숨겨져 있다.
동로마 제국이 성상 파괴 운동을 일으키자 이 종파 운동을 반대한 신자들이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고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은둔 기간이 길어지면서 굴은 더욱 깊이 내려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923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으로 그리스계 원주민들이 떠난 후 버려졌다가 20세기 후반 관광지화되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함께 관광업이 활성화되자 인근 지역 주민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더니 현재는 인구 1만이 넘는 어엿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발견된 36개 지하 도시 중 최대 규모인 데린쿠유 지하도시의 최대 깊이는 85m 지하 8층 규모인데, 안전상의 문제로 지하 30m 까지만 공개 중이다.
데린쿠유는 카파도키아 평원 아래에 부드러운 화산암을 깎아 만든 200개가 넘는 지하 도시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최초의 터널들은 4천 년 전에 파였다고 추정하는 설도 있으나, 터키 문화부의 발표에 따르면 기원전 8~7세기 프리기아인들이 착공했다고 하며, 본래 이 지하도시 위에는 지상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는 1985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의 자연과 문화 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거대한 바위문을 이용해 도시를 성처럼 봉쇄할 수 있어서 티무르의 공격에도 도시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미닫이문처럼 방과 방 사이에 작은 틈새가 있고 그 안에 돌덩이를 끼워서 적군이 들어오면 그 돌덩이를 통로 중간으로 굴려서 막아버리는 방식이었다. 심지어는 하나의 방 양쪽 출입구에 모두 바위문을 만들어서 적군을 아예 포위시킬 수 있는 방도 있었다.
현재 공개되어있는 데린쿠유 지하 도시의 입구 부분도 잘 보면 알 수 있지만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에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각개 격파하기 딱 좋은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이너마이트나 벙커버스터 폭발물 같은 걸로 입구부터 시작해 싹 날려버리거나 땅굴을 파지 않는 이상 재래식 방법으로는 침입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또한 가장 가까운 지하도시 카이막르(Kaymaklı)와도 길이 8 km 터널로 연결되었다.
10:40~11:20 이동 (괴뢰메 마을로 )
11:20~13:00 괴뢰메마을 지프투어 선택관광 (불참 및 주변 자유 관람)
멀리 보이는 30m 높이의 기암괴석인 우치사르와 괴뢰메마을 전경 촬영
아이스크림과 석류 쥬스 시식
괴뢰메마을은 터키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 중 하나로 영화 <스머프>와 <스타워즈>의 모티브가 된 마을이다.
우치히사르 성 (Uçhisar Kalesi)
우치사르 마을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만든 성채. 이 성 건너편에는 오르타히사르(Ortahisar)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도 이런 바위산을 깎아 만든 성이 있다. 거리가 꽤 되는데 놀랍게도 이 두 성은 서로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계곡 여기저기에 작은 구멍들이 많은데, 교신용 비둘기들을 양성한 곳이라 한다.
또는 바위산 중간에 입구를 뚫고 사다리 등으로 올라가 드나드는 등 침입에도 대비했다고...
카파도키아의 버섯 또는 우산모양의 바위가 생성된 것은 300만년 전 인근에 있는 3개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것으로, 첫 번째 폭발때 화산재가 쌓여 굳어진 응회암이 생성되고 이어서 좀더 단단한 현무암이 쌓인 후 오랜 세월동안 침전과 풍화를 거치면서 응회암이 깍여 나가며 기둥이 되고 위의 현무암이 남으면서 생긴 것이다.
13:00~14:00 중식 (항아리케밥, 평점 4점)
14:25~15:10 카이세리 (Kayseri) 카페트 매장 방문
이곳은 로마 시대의 카이사리아(Caesaria)였던 곳으로, 다니슈멘드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기 때문에 로마-셀주크 시대 건축,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카페트의 명산지이기 때문에 관광지에서 바가지 쓰지 않는 저렴한 가격으로 카페트를 구입할 수도 있다. 대나무, 실크, 양가죽, 면 등 다영한 재료를 활용한 고급 카페트....
영업사원에 설명에 의하면 중고일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투자가능품목이라고 한다.
돈이 많았으면 양가죽+실크 카펫트 하나쯤 턱하니 사고 싶었지만......
일단 참고 !!!!!
15:24~16:30 6대 박물관 선택관광...... 박물관투어를 선택하지 않은 우리는 주변에서 휴식
16:30~16:40 우치사르 및 데브란트 계곡의 낙타바위 구경
17:00 Dinler Hotel 도착 및 석식
20:00 밸리댄스 선택관광 (불참)
우리 팀중 관람하신 분의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받아 간접 구경으로 만족
* 버스 이동 중 선택관광 참여 여부 결정 및 비용 정산
가이드비용 (100유로) + 카파도키아 열기구 (250유로) + 파묵칼레 유적지 카트투어 (60유로) + 이스탄불 야경투어 (80유로) = 총 490유로 지불
가이드왈 한국에선 터키에 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스탄불도 지진대 들어 있어 언제 터져도 이상할 거 없다면서 터키 전체가 마치 위험한 지진지역처럼 말하며
터키행 관광객들에게 위기의식을 주고 있다고 .....
지금 터키사람들에겐 오히려 실천하는 지원과 도움....
그리고 현지에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광이 필요하다고 설파............
* 튀르키예와 한국의 관계에 대해
- 1990년대까진 튀르키예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과 튀르키예가 3·4위전에서 만나게 되면서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튀르키예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한국측 응원단의 대형 튀르키예 국기 퍼포먼스 이후로 튀르키예가 형제의 나라(Kan-Kardeş ülkesi)라는 인식이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생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 1949년 합법 정부 승인. 1957년 수교하였다.
> 튀르키예인은 스스로를 '튀르크'라고 부른다. 튀르크는 한자 가차로 쓰면 돌궐이다.
> 튀르키예는 6세기부터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유럽에 걸쳐 살던 튀르크족 (한국어로 돌궐족)의 후예로 북주 북제 중국을 속국으로 삼고 오래 군림했으며, 고구려와 함께 존재했던 민족으로 오랫동안 고구려와 동맹을 이어온 사이였다.
연개소문이 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했으며, 1707년에 몽골 오르혼강에서 발견된 비석에 의하면 - 돌궐족 지도자의 업적, 주변국과의 관계가 적혀있음 - 572년 돌궐의 지도자 무한카간이 사망하자 고구려에서 사절을 파견했다고 한다.
튀르키에인들은 이런 역사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학교 사회책을 통해 튀르키예와 한국이 같은 알타이민족이고 형제로 같이 살았다고 배운다고 한다. 또한 고구려는 돌궐의 군사 원조를 많이 받았다. 약 1400년 이후, 한국과 튀르키예는 중국과 소련을 양 끝에서 포위한 제1세계의 군사적 요충지로, 제2차 냉전에 이르러선 다시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는 잠재적인 동맹국 같은 관계로 다시 만났기에 참 특별한 인연이다.
> 한국전쟁시 미국, 캐나다, 영국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참전용사를 파견한 나라로
당시 소련의 영역확장에 위기를 느낀 튀르키예는 NATO에 가입하고자 했으나 북대서양과 지리적으로 멀고 무슬림이 대부분이라는 이유로 NATO회원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한국을 침략하며 이 기회를 이용하고자 했다.
> 지원군과 징집병 급파 : 당시 형제의 나라를 도와야한다며 많은 젊은이들이 참전에 지원했다고 함
> 6.25참전시 아흐멧 대위가 중공군 인해전술 남하에 대응해 자신이 있는 고지에 폭격 요청을 하여 장렬히 전사함으로써 중공군 남하 저지
> 전사자도 미군 다음으로 많이 발생했으며 전쟁 이후엔 일부가 남아 자비로 고아원 (수원의 앙카라학원) 까지 운영
- 튀으키예에선 이때를 배경으로 튀르키예 참전군인 슐레이만과 당시 어렸던 김은자씨 얘기를 "아일라"라는 영화로 만들어 상영하여 무려 500만명에 이르는 관람객을 동원
> 그러나 한국은 터키에 대해 무관심
> 튀르키예의 모 정치인이 "한국에 대함 짝사랑은 제 그만" 기고
> 노무현 대통령 방문 및 원자력발전소 건립 합의
> 전 세계적으로 탈원전 움직임 및 미국의 압력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 때 원전건설 합의 파기
> 2002년 전에 한국의 이미지는 한국 전쟁때 도와준 혈맹인데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유럽 국가들처럼 잘살아진 국가라는 감정이 있었다.
> 2002 월드컵때 브라질 대항 예선전때 한국인 주심의 오심으로 터키가 지면서 터키인의 분개
- 당시 터키 축구팀은 48년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상태라서 더욱 분노는 컸음
- 터키교민회에선 한국교민의 외출 금지 권고까지 내림
> 3.4위전때 붉은 악마의 터키전 응원에 감격 및 한 달 동안 터키 현지 방송국에서 계속 방송
- 당시 튀르키예에 여행등으로 체류 중인 한국인들에게 호텔, 민박과 같은 숙박업소에서는 숙박비를 받지 않았고 식당에서는 식사비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 IMF 이전에 홍해벨트 개발 : 처음 대우컨소시엄이 땄다가 독일-러시아 컨소시엄이 최종 협약.... 현재 호화호텔과 리조트 둥 건축 및 유럽 관광객 많음
> 문화적으로 유사점도 많다고 함
- 어순과 단어의 발음이 비슷함
- 가족호칭을 부르는 단어가 많음 (영어에선 in-law만 붙이면 배우자 가족을 의미하나, 튀르키예어엔 동서, 형수 등 각각의 호칭이 있음)
- 집에 들어갈때 신발을 벗는다
- 웃어른을 공경함 (어른먼저 식사 시작)
* 6.25 전쟁 시 쿠르드족이 대부분 참전했다는 설은 당시 언론사의 참전용사 인터뷰로 인한 오해...
- 쿠르드족은 중동내 4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으나 한번도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는 민족으로 터키 동남부, 시리아, 이라크에 걸쳐 살고 있다.
- 1차 세계대전 시 영국이 오스만제국을 물리치기위해 쿠르드족을 꾀어 독립국가건설을 약속하나 터키공화국이 생기며 약속은 무위가 되고 지금까지도 튀르키예정부와 쿠르드족은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https://v.daum.net/v/20230306114746284?x_trkm=t
[팩트체크] 튀르키예 교과서에 "한국은 형제국가"라고 쓰여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대지진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튀르키예에 대한 구호와 지원이 잇따르면서 우리나라와 튀르키예의 우호 관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양국은 서로를 '형제
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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