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앞둔 국내 이공계 석학의 중국행이 본격화
이기명·이영희 교수 이어 홍순형·김수봉 교수도…
…'연봉 4억·수천억 실험 지원' 거센 러브콜

정년을 앞둔 국내 이공계 석학의 중국행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기명 전 고등과학원 부원장, 이영희 성균관대 HCR 석좌교수에 이어 세계적인 석학 2명도 최근 중국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한 명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내 부품·소재 분야 연구개발(R&D) 정책을 총괄했던 나노 소재 권위자, 다른 한 명은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설립위원으로 한국 기초과학 연구 환경 조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입자물리학자다.
1일 과학계에 따르면 다수의 국내 이공계 석학들이 '연봉 4억원 이상', '대규모 실험 지원' 등 파격적인 조건에 더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중국 과학자와 연구를 이어가며 우수한 학문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중국행을 고려하고 있다.
중국과 협력을 늘려가는 석학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것이다. 더이상 소수의 개별 선택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이 기술 패권을 주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과학자들을 지켜내는 동시에 이미 중국으로 옮긴 석학들의 지적 자산을 국내로 환류시키기 위한 '투트랙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정년과 연구비 지원 문제가 중국행 고려하는 핵심요인"
과학계에 따르면 중국으로 이미 자리를 옮긴 이기명 전 고등과학원 부원장, 이영희 교수 외에도 홍순형 KAIST 명예교수, 김수봉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중국 대학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4명 모두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기한림원) 회원으로 각 분야의 국내 권위자다.
홍 교수는 정년 후인 약 3년 전 중국 상해교통대로 이동하기로 확정하고 최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홍 교수는 '꿈의 소재'로 불리는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고강도 나노복합소재 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석학이다.
2010년 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상 중 하나인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했다. 특히 홍 교수는 2010년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의 부품소재사업 MD로 선정돼 국내 부품·소재 R&D 정책과 투자를 총괄할 정도로 과학계 영향력이 적지 않다.
홍 교수의 사정을 잘 아는 A 교수는 "홍 교수의 중국행은 100% 정년 문제다"며 "학교측에 수차례 정년 연장을 요구했지만 좌절했고 정년 후 연구할 곳을 찾지 못하면서 중국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에 근접한 국내 석학으로 꼽히던 김수봉 교수는 정년을 앞둔 60세 무렵, 70세까지 정년을 보장받고 중국 중산대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교수는 입자물리학과 중성미자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자다. '유령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의 정체 확인은 우주의 기원 탐구와 맞닿아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는 분야다.
김 교수는 국내 중성미자 연구를 이끌었다. 전남 영광의 한빛원자력발전소에서 생성되는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실험시설인 ‘원전중성미자실험(RENO)’을 구축하고 2012년 세 번째 변환상수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중성미자 연구 분야 중 가장 큰 난제로 꼽히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김 교수는 2017년 입자물리학 최고 권위상인 '브루노 폰테코르보상', 2020년 '호암상' 등 국내외 과학상을 휩쓸었다.
특히 김 교수는 한국 기초과학 연구의 핵심 기관인 IBS의 설립을 주도했다. 국내 기초과학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50세 중반 RENO보다 규모가 큰 1000억원 규모의 중성미자 측정 실험을 여러 차례 진행하려다 국내에서 무산되면서 중국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중국에서 혁신적인 소형 중성미자 관측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으로 자리를 옮긴 이기명 전 부원장과 이영희 교수는 국가 석학으로 지정된 과학자임에도 정년퇴임 후 안정적인 국내 연구처를 찾지 못하다 중국행을 택했다.
석학의 중국행은 흔한 현상이 돼가고 있다. 해양생물학 권위자인 김수암 부경대 명예교수는 중국해양대에서 강의를 진행 중이다. 메타물질 석학인 이영백 한양대 명예교수, 물류 시스템 분야 권위자인 김갑환 부산대 명예교수는 각각 중국 푸단대, 중국 저장대에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이탈, 중국 이동 만연화할 것"
중국으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은 국내 석학 6명에게 한국 과학자들의 중국행에 대한 견해를 직접 물었다. 이들은 "중국이 제시한 조건이 파격적이고 중국 과학계 수준이 높아지며 국내 이탈 현상은 만연화될 것"이라며 "특히 정부가 과학기술계를 '카르텔'로 몰며 지난해 R&D 예산을 삭감하는 상황에 처하며 석학들의 자부심이 크게 저하돼 이탈 현상에 불을 붙였다"고 입을 모았다.
학계에 따르면 중국의 국내 이공계 석학을 데려오려는 공세는 집요하다. 한 번에서 끝나지 않고 대학, 연구자, 연구기관, 컨설팅기관 등 다양한 주체들이 저마다 정년을 앞둔 석학에 중국 이동을 수차례 제안한다. 연구 성과를 낼 수만 있다면 정년도 70세, 80세 등 다양하게 제안한다.
이적은 제안받은 과학자들의 설명은 이렇다. 서울대 B교수는 "최근 2년만 해도 비공식, 공식적인 이동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다"며 "연봉 30만 달러(4억2762만원), 대규모 실험 지원 등을 보장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전북대 C교수도 "여러 번 이적 제안을 받았으며 연구비와 월급 및 체재비, 기타 비용에 대한 재정 지원 조건이 너무 좋아서 중국행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중국으로의 이동을 제안받은 과학자들의 연구 분야도 다양하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처럼 산업과 밀접한 것부터 중성미자, 블랙홀 등 기초과학 연구까지 다양하다.
중국은 국내 석학들에게 갈수록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대 D교수는 "국제협력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수준 높은 학문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은 필요한 일이 됐다"며 "중국은 한국에서 가깝고 동양 문화권으로 한국과 공통적인 요소가 많아 연구자가 중국에 적응하기 용이하다"고 말했다.
● 경직된 체계도 옛말…과학자 우대하는 중국과 반대로 가는 한국
중국이 경직된 체계로 연구자를 통제할 것이라는 과거의 인식과는 달리 최근 연구자에 다양한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행을 고려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B교수는 "언제든 한국 방문 보장을 조건으로 제시받았고 중국에는 과감한 연구 지원을 통해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지지하는 문화가 형성됐다"며 "한국은 연구 지원 시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보고서 등 연구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KAIST의 E교수는 "과거에는 정치·경체 체제가 달라 선택지에 중국이 거의 없었지만 중국으로 자리를 옮겨 자유롭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사례가 주변에 많이 알려지면서 중국행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등과학원 F교수도 "처우보다도 제자나 공동 연구한 동료들이 중국에 많고 중국이 과학기술자를 대폭 우대하며 중국 연구자들이 자부심을 가지며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중국은 공격적인 국가과학자 우대정책으로 과학자의 위상이 높아졌다. 대표적인 정책이 중국 양원(중국과학원· 중국공정원) 원사제도다. 최고 과학자 직책으로 원사로 뽑히면 차관급 대우와 예우를 평생 받을 수 있다.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소속 기관에서 연구할 수 있다. 연초 국가 최고 지도자가 원로 과학자를 예방하는 전통도 있다.
반면 한국은 중국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울대 G교수는 "지난해 R&D 삭감으로 인해 여러 연구를 중단하는 일을 겪으며 한국에서 일하는 과학자로서 사기와 자부심이 크게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 "중국행 시대적 흐름…현실 가능한 전략 구상해야"
과학자들은 정부가 국내에서 오래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동시에 이미 중국으로 옮긴 석학의 지적 자산을 국내로 환류시키기 위한 전략을 여러 단계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E교수는 "연구비를 따낼 수 있는 교수는 정년에 관계 없이 계속 연구할 수 있게 보장해주거나 중국의 원사처럼 과기한림원 회원 등 국가가 지정한 소수의 석학은 연구를 평생 이어가고 후학을 양성할 수 있게 도와주며 경직된 정년 제도를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년에 도달해 5년 전 은퇴한 서울대 H교수는 "정년이 될 때까지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떤 한 시점에서 멈춰야 한다"며 "서울대에 있을 때 이용한 실험시설을 퇴직하며 사용하지 못하고 그 실험시설이 현재 잘 이용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고 했다.
특히 E교수는 중견 교수 시기부터 정년 연장을 약속해 안정적인 연구 여건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KAIST를 비롯해 정년 연장 제도가 있는 대학 대부분이 60세가 넘어야 정년 연장을 결정하기 때문에 정년을 몇 년 앞둔 상태에서 연구비를 따기 쉽지 않다"며 "정년 연장이 안 되면 연구비를 따더라도 연구기관을 다 못 채우고 연구를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포스텍은 올해부터 우수한 50세 교수를 대상으로 70세까지 학교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시작했다. 비슷한 제도가 국내 다른 대학에 널리 퍼져야 한다는 게 E교수의 생각이다.
동시에 국내 정년과 상관 없이 연구 성과를 위해 석학이 중국으로 향했다면 석학을 통해 유용한 지적자산이 오히려 한국에 환류되도록 체계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중국에 있는 석학이 한국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지식을 공유하도록 독려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러 과학 분야에서 미국, 유럽 등 과학선진국을 이미 추월한 중국과의 연구를 빼놓고는 세계적인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D교수는 "연구자들이 산업적으로 민감한 이슈나 자국에 손해를 직접적으로 끼치는 분야 연구를 위해서 중국으로 가는 것을 방지할 필요는 있지만 보다 나은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 중국으로 가는 선의의 학자들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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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하버드대 교수, 차세대 재료 과학자 등 美인재 잇단 중국행(종합)
'미중 패권 경쟁' 中, 해외 이공계 인재 적극 영입…AI 인재도 칭화대 선택
(베이징·서울=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권숙희 기자 = 하버드대에서 퇴임한 60대 나노 과학자와 30대 차세대 재료 과학자 등 미국의 이공계 인재가 잇달아 중국행을 선택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국가 차원의 해외 인재 영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생물학과 의학에서 나노 기술을 통합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해온 찰스 리버(66) 전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 명문 칭화대의 광둥성 선전 국제대학원에서 연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날 대학원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그는 또한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근무하다 지난 2022년 중국에 돌아온 생물학자 니엥 옌이 만든 선전의학과학원에서도 연구를 수행하기로 했다.
리버 교수는 지난 2021년 12월 미국 보스턴 연방법원 배심원단으로부터 중국 '천인계획'과 관련한 허위 진술 등의 혐의에 유죄 평결을 받았다. 그는 2023년 2월 하버드대에서 퇴임했다.
중국 정부가 2008년 12월부터 추진해온 '천인계획'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세계적인 수준의 학자와 교수 1천명을 유치한다는 해외 인재 유치사업이다
중국 정부는 '외국 기술 인수' 전략의 일환으로 이에 참여하는 해외 과학자들에게 높은 연봉과 주택, 의료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리버 교수는 천인계획 참여 사실을 부인하고, 중국 정부로부터 받은 연구비를 숨긴 채 허위로 소득신고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미국 미시간대에서 활동하던 30대 재료 과학자 리융시는 최근 중국 난징대 쑤저우캠퍼스 기능성 재료 및 지능형 제조 연구소의 부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난징대에서 투명 태양광 기술과 웨어러블 의료기기 개발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난징대 쑤저우캠퍼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리 교수를 소개하면서 '국가 고급 청년 해외 인재'라고 명시했다. 이는 그가 '천인계획'의 일환으로 영입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하이 화동이공대 박사학위를 받은 리 교수는 미국에서 특허를 10건 출원했고 이 중 3건은 기술 이전에도 성공했다. 그는 미시간대에서 '과학 탐구상'을 수상하고, '우수 과학자'로도 지명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주목받는 인공지능(AI) 과학자인 알렉스 램 또한 올해 가을학기에 칭화대 AI대학원 조교수로 부임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구글 딥마인드 등 미국 주요 빅테크에서 두루 경력을 쌓으며 한때 중국의 AI 발전 수준을 낮다고 평가했던 그가 이제는 중국 칭화대에 합류해 대학원생을 받을 예정이라고 SCM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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