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유목생활에서 정착생활로 전환하는 지표가 되는 식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냥이나 채집을 하던 사람이 열매가 맺히는 식물을 가꾸면서 얻는 소득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머물면서 씨를 받아 다음 해를 위해서 보관했을 것이다. 포도나무도 마찬가지로 해마다 달콤한 열매가 맺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가꾸고 수확했으며, 먹다 남은 포도에서 흘러나온 즙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특별한 향과 이상한 힘을 갖는 물질로 변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거품나는 액체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마실수록 머리가 가벼워지고 모든 걱정이 사라져 버렸다.
이 때부터 이들은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이들은 세련된 솜씨로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고, 여기에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보관하였다. 와인의 활기를 돋구는 성질과 정신적으로 자극을 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고 죽음과 사후세계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와인과 그 마술적인 성질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자연히 이들은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고 품종을 선택하고 적당한 토양에 심고 약탈 동물로부터 보호하게 되었다.
이들은 낮과 밤, 태양과 달, 하늘과 별, 불과 물 그리고 흙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고, 형이상학적인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징이 필요했다. 마침 와인은 초자연적인 발효현상으로 신비스러운 어떤 것을 제공하였다. 포도를 으깨면 (싱싱한 포도의 파괴와 죽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즉 자연스러운 부활이었다. 그리고 거품이 나면서 가열하지 않는데도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불가능하게 보였던 정반대의 요소인 물과 불의 결합에서 초인간적인 신비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것 때문에 사람들은 와인을 특별한 성질을 가진 신성한 음료라고 일컫게 되었고, 또 와인은 정신력을 고조시키고, 신체적인 건강을 주면서 우울증을 없애고, 칼로리를 공급하고, 위생적인 음료로서 소화작용을 돕는 등 공헌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발효의 어떤 힘 때문에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 와인을 신성한 음료로 취급하였다. 발효식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사람들은 그가 인생의 신비를 주관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에서는 노아가 와인을 만들고, 그리스, 로마문화에서는 디오니소스나 박카스 등으로 와인을 ‘신의 선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러한 영향력에 대해 하나의 식품으로서 숭배하게 된다. 곡식은 껍질을 벗기고 갈아서 불로 구워야 음식이 되지만, 포도는 부셔서 밟아 그릇에 부으면 ‘신의 음료’가 되었던 것이다.
신화를 떠나서 고고학적인 증거를 보더라도 메소포타미아 아래 있는 수메르에서 최초로 씌여진 책의 하나인 진흙 덩어리에 와인의 재고가 설형문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거래규약, 그리고 부정행위의 방지에 관한 것, 이 때도 이미 이런 것이 시작되었다. 특히 와인에 물 타는 것 그리고 원산지를 왜곡하는 것 그리고 빈티지와 관련된 품질의 중요성을 이 때도 따지고 있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4,000년 전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문자 덕분에 문명의 꽃이 피게 된다. 이집트에서는 찬란한 발전의 여명기가 밝아오기 시작했다. 25세기 이상 모든 수공업과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여, 포도재배, 와인 양조, 그리고 저장기술 등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또 ‘오리시스(Orisis)’는 중요한 신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그는 포도나무와 와인의 신이었으며 재생산과 다산을 관장하였다. 죽음과 부활, 그의 피는 매년 나일강 유역을 기름지게 하는 붉은 점토와 같아 사후 부활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어떤 축제나 의식도 와인 없이는 신의 구원을 얻지 못했다. 모든 귀족들은 정원을 소유하고 그 한가운데 포도나무를 심어, 이를 기르고 많은 노예를 소유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상하고 눈에 보이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
3500년 전에 시작된 헬레니즘 문화에서 오리시스는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게 된다. 그는 정열과 함께 넘치는 활기 그리고 거침없는 에로티즘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곳에는 신성한 휴머니즘의 모임의식이 있었고, 와인을 먼저 신에게 바치면서 와인은 이들의 마음을 융화시키는 촉매작용을 하였다. 심포지움은 와인과 음악, 곡예와 숙련된 기술, 연설 그리고 볼거리가 있었다. 여기에는 와인과 웅변이 있었고, 또 와인과 균형을 유지하는 힘, 와인과 남의 이목에서 자신을 초월하는 힘 등이 있었다. 이러한 힘들이 이들을 이웃나라보다 더 뛰어나고 발전하게 만든 것이다. 와인은 주변 야만족과 개화한 문명인으로 구분하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이 때 플라톤은 와인이 철학적인 토론을 부드럽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고, 사도 바울도 건강을 위한 음료로서 와인을 추천하게 된다.
와인의 역사
1679년에 오빌러 수도원의 수사인 동 페리뇽은 샴페인을 개발하였고 이 시대부터 와인병의 마개로 코르크의 사용이 일반화 되어졌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지 26년 후에 멕시코 정복자인 에스파냐인 코르테스가 신대륙에 포도를 심을 것을 명령한 것을 시작으로 북미 지역과 남미 지역으로 와인이 전파되 었고, 17세기에는 남아프리카, 18세기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캘리포니아에 전파되었다. 그러면서 생활의 향상과 명문 와인의 등장, 병에 넣어 보관하는 방법, 편리한 운반 등으로 인해 와인의 보급은 물론 소비량 역시 크게 늘어났다.
18세기 후반에는 미국에서 수입된 야생포도나무의 뿌리에 있던 피록세라선충(포도나 무뿌리진딧물)이라는 기생충의 창궐로 유럽전역 및 세계의 거의 모든 포도원을 황폐화시키는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저항력이 강한 미국산 포도묘목과 유럽 포도 묘목의 접붙이기로 해결할 수 있었고 1860년 '미생물에 의해 발효와 부패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파스퇴르에 의해 발표되어 효모의 배양, 살균, 숙성에 이르는 와인제조방법이 크게 발전을 이루었다.
그 이후 산업화와 교통 수단의 발달 덕분에 와인의 생산과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각 국가별로 나름대로 규정을 두어서 제품의 차별화와 고급화를 통한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5년 프랑스에서는 와인에 관한 규정(AOC)을 제정하여 포도의 재배와 와인의 양조 과정을 엄격히 관리하여 좋은 품질을 유지함으로써 국제적으로 프랑스 와인이 좋다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에는 이태리, 독일, 미국, 호주, 스페인 등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와인법을 제정하여 실시해 오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농업 기술의 발달로 포도의 생산량은 늘어나는 반면,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1인당 와인의 음용량은 감소하여 와인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이 많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가 발전됨에 따라 와인의 소비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므로 와인 생산국들은 자국의 과잉 생산된 와인을 이 지역에 수출하기 위해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와인이 과잉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연도별로, 또 지역별로 일기가 불순한 경우에는 가끔 고급 와인의 생산량이 감소하여 이들 와인의 가격이 인상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전세계 약 50개국의 850만 헥타르의 포도원에서 연간 250억 병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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