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런과의 전쟁이 빨리 끝나고
전세계 에너지 공급도 원할히 해결되길 바란다.
미 서부해안, 한국에 항공유 70% 이상 의존
석유화학 제품도 의존도 높아…정제 기술 때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호르무즈해협 봉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동맹국들에 떠넘기며 "우리는 석유가 넘쳐나니 (중동산 원유 대신) 미국에서 석유를 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한 에너지 공급망 붕괴는 석유 순수입국인 미국의 경제적 상황에도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미국은 항공유에서부터 나프타까지, 원유를 정제한 석유제품 상당 부분을 한국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미 캘리포니아주(州)가 이란 전쟁으로 휘발유와 항공유 공급 위험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주로 멕시코 연안에서 원유를 생산하는데, 캘리포니아주와 같은 서부 해안은 아시아 정유업체들로부터 항공유와 경유를 상당 수준 수입해 왔기 때문이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한국 정유업체가 충분한 양의 원유를 수입하지 못하면 석유제품 수출 물량도 줄어, 이를 수입해 판매하는 미국 기름값까지 높아질 수 있다.
미 서부 해안지역, 항공유 대부분 한국서 수입
항공유가 대표적이다. 미국 석유협회(API)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주, 하와이 등 미국 서부 해안지역은 항공유의 대부분인 85%를 한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AI)과 에너지 전문매체 '에너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의 전체 항공유 수입량은 하루 평균 10만9,000배럴로, 한국이 하루 평균 7만7,000배럴을 공급해 71%를 차지했다. 아거스미디어는 지난달 18일 로스앤젤레스 시장에서 항공유 가격이 4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석유화학제품도 마찬가지다. 미국 화학산업은 셰일가스를 원료로 하는 에탄 분해 설비(ECC)에 편중돼 있어 에틸렌 생산에는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에 필수적인 벤젠이나 톨루엔 등 나프타를 분해한 석유화학제품은 한국에 의존한다. 독립적 범용 원자재 정보서비스(ICIS)와 인덱스박스 등의 2024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벤젠 수입량의 46%, 톨루엔 수입량의 57%를 책임지는 1위 공급국이다. 페트병 등의 원료인 파라자일렌(PX)도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가장 큰 공급국이다.
미국 정유시설, 자국산 원유 처리 못 해 수입
원유 수출국인 미국이 석유제품을 수입하는 데는 정유시설의 기술적 문제도 한몫한다. 미 폴리팩트는 지난달 24일 "미국산 원유 대부분은 유황 함유량이 낮고 점도도 낮은 경질유인데 대부분 정유소들은 해외에서 공급받는 무겁고 유황 함량이 높은 중질유를 처리하도록 건설돼 있어, 국내 원유 수요를 충족하려면 외부에서 수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유의 경우 처리 기술 문제에 환경오염 규제까지 더해져 미국 가격이 한국보다 높게 형성돼 있다. 한국의 1일 기준 경유 평균 가격이 리터(L)당 1,895원인 반면, 지난달 말 미국 경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5.20달러(L당 약 2,063원)였다. 최근 한국의 2배 가까운 가격이 표시된 미 캘리포니아주의 한 주유소 사진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석유 걱정은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미국 소비자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미 석유·에너지 컨설팅기업인 '리포 오일 어소시에이츠'의 앤드루 리포 대표는 최근 해운전문매체 지캡틴에 "일본, 한국 같은 국가들이 석유제품 수출 제한에 동참하면 (미국) 정치인들은 자국 내 공급 확보를 위해 휘발유, 경유, 항공유 재고 비축을 지시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사재기 심리를 확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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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 장기화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아시아 전역에서 연쇄 이상 징후가 확산되고 있다.
5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전쟁 여파로 촉발된 석유·석유화학 원료 공급 차질이 사실상 전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쓰레기봉투 사재기가 벌어졌고, 일본에서는 만성 신부전 환자 치료에 쓰이는 플라스틱 의료용 튜브 품귀 우려가 고조됐다. 말레이시아 장갑 제조업체들도 석유 원료 조달 차질로 의료용 장갑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공급망 교란의 범위도 광범위하다. 중동은 세계 나프타의 17%, 플라스틱 수지의 30%, 비료 원료인 황의 45%, 반도체·의료·항공 분야에 쓰이는 헬륨의 33%를 공급한다. 인도에서는 콘돔 제조업체들이 포장재·실리콘 오일·암모니아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호소하고 있으며, 미국 농가의 비료 가격도 이미 3분의 1가량 올랐다.
아시아 각국은 비축유 방출, 연료 가격 상한제, 근로 시간 단축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전쟁 발발 전 출항한 마지막 원유 선적분이 4월부터 소진되면 공급난이 본격화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충격은 일상재와 의료 현장을 가리지 않는다. 신발·의류·비닐봉지·의약품 생산에 필수적인 석유화학 제품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세계 원유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높은 의존도를 가진 아시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포장재 의존도가 높은 화장품 등 소비재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장 피해는 이미 가시화됐다. 중국 저장성 하이닝의 한 폴리에스터 제조업체는 원료 가격이 50% 치솟자 신규 주문을 전면 중단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포장재 가격이 두 배 급등하면서 기업들이 포장 두께를 줄이거나 종이·유리·알루미늄·재활용 플라스틱 등 대체 소재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생산라인 교체와 안전 규정 충족에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린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JP모건은 “문제의 초점이 이미 가격 상승에서 물리적 부족으로 이동했다”며 “아시아는 예방 단계를 넘어 실제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도 “호르무즈 해협이 즉시 정상화되더라도 플라스틱 산업이 안정을 되찾기까지 수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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