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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추천 음반과 추천 음악

섬세하고 웅장한 음악 창조자- Eugene Ormandy

SaintShin 2022. 10. 12. 01:40

철원에서 군대 복무하는 동안 유일한 낙 중 하나가 라디오 FM을 통해 클래식을 듣는 것과 군 전역이후에 어떤 음반을 살까 하는 관심에 좋은 음악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유진 올만디란 지휘자를 알게 되었고 그의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음악을 접하면서 그만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Sonderkonzert of 1963 Wiener Festwochen at Theater an der Wien on 9th June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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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올만디 (Eugene Ormandy,  1899. 11. 18~1985. 3. 12)

1899년 11월 18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Jeno Blau”이며 실로 놀랄만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4살 떄부터 바이올린 연구를 할 수 있었고, 5살 때 부다페스트 왕립음악원의 최연소 학생이 되어 J. 후보이에게 사사하고, 14세 때 졸업, 15세 때 바이올린 연주로 국가상을 받았다. 이런 경험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올만디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길 원했었기에 가능했다.

1936년 유진 올만디가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려고 하자 그의 아버지는 많은 실망을 했다고 한다. 훗날 올만디는 가끔 그의 아버지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 보다 훌륭한 지휘자가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란 걸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곤 했다.

유진 올만디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미국 순회 연구책임자로 초청받았다. 그러나 순회공연의 실패로 금전적 어려움에 처한 올만디는 부다페스트에서 함께 음악 활동을 하던 오랜 친구를 뉴욕 브로드웨이 Coffe shop 에서 만나, 그로부터 뉴욕 캐피털극장 심포니 책임자로 있던 “Erno Rapee”에게 오디션 받을 것을 권고 받고, “Rapee”의 오디션 결과 “당신은 우리 극장에서 연주하기엔 너무 훌륭한 연주자”란 칭찬과 함께 “당신의 실력이라면 카네기홀에서 연구하는 것이 마땅하다”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리하여 1942년 올만디는 캐피털 극장 심포니 연주자로 데뷔했다. 이 기간동안 올만디는 뉴욕 필 하모니 책임자로 있던 “Toscanini”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 때 받은 영향으로 훗날 올만디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섬세함과 균형감 넘치는 독보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후 CBS 라디오 지휘자로서, 라디오의 가장 중요한 지휘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1936년 유진 올만디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Leopold Stkowsky”의 밑에서 지휘를 맡게 되었다. 이 후 1938년 그는 영구 지휘자로 승격되었으며 “겸손한 대 지휘자”란 칭송을 받았다.
올만디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부드럽고 낭만적인 음색을 지닌 오케스트라로 재창조하였고 104명의 음악가들을 일사불란하게 관리하는 위대한 지휘자가 되었다.

1970년 유진 올만디는 여러 가지 공로를 인정받아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였고 세계 순회공연을 하였으며 1973년 미국 심포니 최초로 중국공연을 하였다.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역사상 전례없이 44년 동안 지위자로 군림했다.
1980년 1월 10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카네기 홀의 연줄를 마지막으로 명예로운 퇴임을 하게 되었다.
그 후 5년 뒤인 1985년 3월 12일 86세의 나이로 세계적인 음악 대거장인 그는 미국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Isaac Stern: violin-Philadelphia Orchestra-Eugene Ormandy: conductor-1958 (The second recording of this concerto by Stern and Ormandy)-1.Allegro molto appassionato 2.Andante 3.Allegretto non troppo-Allegro molto viv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