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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대만 Taiwan

대만 국립박물관 관람

SaintShin 2022. 11. 7. 14:08

대만 여행 3일차,

장개석기념관 다음으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은 1965년 개관한 대만 최대 규모의 박물관으로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루브르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5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장개석이 중국에서 남하시에 가지고 온 중국 보물이 약 69만여점이 있다고 한다.

장개석 국민당이 대만 남하시 가져온 대표적인 것이 3가지인데 200만원 군대, 중앙은행의 금괴, 베이징 고궁박물원의 보물이 그 것이라 한다.

이곳에는 1933년 일본군의 침략으로 유물이 국외 유출될 것을 우려한 국민당이 중국의 유물들을 모아 자금성에서 난징을 통해 상하이로 옮겼다. 유물 13,291상자와 중앙박물관 유물 6,066상자 규모였다.
그 후 이 유물들은 여러 곳을 거쳐 결국 난징에 모이게 되는데, 1948년 국민당과 공산당의 전세가 역전되자 장개석은 핵심유물을 선정해 타이완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총 2,972상자 608,985점의 유물이 옮겨졌는데 여기에 중요한 유물들은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유물들을 정리한 후 일반인에게 공개하였다고.

본래는 중화민국 베이핑(현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고궁(자금성)에 있었으나 국공내전 시기인 1948년 장제스의 명령으로 그 유물 거의 대부분을 대만으로 실어와 타이중 등지에 일시 보관하다가 1965년 11월 12일 타이베이에서 재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너무나 유물이 많아서 한 장소에 전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만 전시하고 나머지는 보관하였다가 3-6개월 주기로 전시유물을 바꾼다고 한다. 따라서 이 유물들을 한 번에 모두 관람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미국에서 상당한 보상을 전제로 보물의 일부를 돈으로 사겠다고 한 제안도 거절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국립"(國立)이라는 칭호를 빼고 대륙의 고궁박물원과 구분하기 위해 타이베이 고궁박물원(台北故宫博物院)이라고 한다. 
중화민국에서는 주로 故宮이라는 약자로 많이 쓰인다. 배경지식 없이 한자만 보고 타이베이에 있는 궁궐로 착각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남부분원은 故宮南院으로 쓴다.  다만 영어로 museum을 병기하기에 그리 헷갈리지는 않는다. 참고로 타이베이에는 왕조의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궁궐도 없다. 물론 유물의 본 소재지가 베이징 자금성이라서 고궁이라는 명칭을 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입장료는 성인은 NTD 350(약 12,000원), 중화민국 국적자는 NTD 150, 학생은 무료이다(대학생의 경우 국제학생증을 지참하면 입장료가 할인된다).

 

당 회도가채사녀용 (唐 회도가채사녀용) 양귀비 상

이게 실제 양귀비 모습이라는 가이드말에 좀 의아했다. 하기야 엣날엔 지금처럼 날씬한 여인보다 통통한 여인을 복스럽고 미인이라고 한 경우가 있었으니 ....미인의 개념도 시대와 나라에 따라 기준이 다른 건 당연하다.

 

백자 동자 목침

 

당나라 도자기로 주재료인 정요자기는 구울떄 숯을 연료로 가마 안의 산화염으로 인해 회색빛이 도는 노란빛을 띈다.

 

북송시대백자
청나라 도자기
경덕진 도자기
당  삼채증장천왕상 (唐  三彩增長天王像 )

 

대만국립발굴관 301실은 모공정과 종주종 2개의 전시품 밖에 없다.

종주종

이  종이 유명하게 된 것은 여기에 새겨진 123자의 글씨때문이라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여왕(勵王) 때 남방의 복국이 쳐들어 왔을때 왕이 직접 토벌대로 나서 승리하고 돌아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악기라고 한다.

종주종에 돌출된 돌기들은 각기 길이가 달라 타종시 소리도 각기 다르다고 한다.
모공정  [毛公鼎]

모공정은 서주 선왕대의  정으로 취옥백채 및 육형석과 함께 국립고궁박물원의 3대 보물이다.
중국 청(淸)나라  산시 성(陝西省) 치산 현(岐山縣)에서 발견된 발이 셋 달린 솥으로 
 이 정은 음식을 삶거나 익히는데 사용하였으며 주로 왕족과 귀족들만 주조하였다고 한다.
솥에 적힌 명문은 7개 단락 32행 499자로 주요 내용은 주(周) 선왕(宣王)이 즉위한 이후 조정을 바로잡기 위해 숙부인 모공(毛孔)에게 나라 안팎의 대소사를 돌보도록 부탁하여 모공이 정사를 살핌에 힘쓰고 사사로움이 없었기에 왕은 모공에게 많은 녹봉을 하사하였다.  
이에 모공이 이 정을 주조하여 후손에게 가보로 남겼다고 한다.

 

벽사

벽사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상상 속의 동물로 머리는 용, 몸은 사자, 날개는 봉황,

꼬리는 기린으로 벌린 입으로 들어온 재물이 꼬리로 항문을 덮고 있어 배설을 하지 않아 재물이 쌓인다는 말로 상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물이라고 한다.  

 

대만 최고의 보물 중 하나이며 대만국립박물관 3대 보물 중 하나인 취옥백채...

대만 최고의 보물 중 하나이며 대만국립박물관 3대 보물 중 하나인 취옥백채, 청나라 말기 광서제 부인이 혼수로 가져온 유물 중 하나로 배추는 순결함을 상징하고 배추위에 정교하게 새겨진 여치는 많은 자식을 상징했다고 한다. 가이드말로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여러 차례 매입을 하려했으나 실패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무엇보다 이 조각의 백미는 배추위에 있는 여치 조각의 세밀함에 있다

이 옥들의 배치가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 것이 다름아닌 죽은 사람을 염할 떄 쓴 옥과 손가락에 끼운 조각이라고 한다.

 

마치 동파육처럼 생긴 육형석
육형석

대만 최고의 보물 중 하나이며 대만국립박물관 3대 보물 중 하나인 육형석
비계와 돼지껍데기의 숨구멍도 표현했다고 하는데
언뜻보면 진짜 고깃덩어리인가 싶을 정도로 정교하다.

육형석에 대한 영문 설명판넬

 

서태후가 쓰던 벽옥병풍

청대보물로 중일전쟁떄 왕정위가 일본 천황에게 주었다가 후에 찾아온거라고 한다.

 

상아투화운룡문투구 (象牙透花雲龍紋套球)

청나라 시대 황재의 장난감으로 쓰였던 유물인 상아투화운룡문투구(象牙透花雲龍紋套球)

구 안에 또 구가 있어서 17개의 구로 이루어진 놀이감으로  밖에서부터 안으로 파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17개의 구는 따라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속이 꽉 찬 상아 덩어리의 겉면을 먼저 조각한 다음 차츰 ‘안쪽’을 파고 들어가 조각한 작품으로 3대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학자들이 같은 제품을 제작해보기위해 장인들에게 의뢰했지만 아직 12구 이상을 제작해낸 사람이 없다고하니 당시 조각기술 수준이 얼마나 발전했었는지 알수있다.

 

 

박물관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친구들
사리탑
아주 작고 정교한 조각
청나라 진조장(陳祖章) 씨앗작은배(果核小舟)

높이 1.6cm, 길이 2.4cm의 미세조각의 결정체. 
배 안에는 6명의 사람이 타고있으며 문까지 열고닫을 수있는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거기에 더더욱 놀라운건 이 배가 올리브씨앗을 조각해서 것으로 실제로 돋보기로 봐야 한다.  6명의 사람의 동작과 옷도 다 다르며 심지어 표정까지도 표현되어있다.

 

 

황옥반리세(黃玉蟠螭洗).

용으로 두른 황옥 세숫대야로 청나라 건륭시대 (1736년~1795년)   뿔이 없는 용을 교룡이라 하는데, 교룡들이 세숫대야를 둘러싸고 있으니 왕의 물건으로 추정

중국 귀족의 거실을 재현해 놓은 모습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손문 동상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안내 영상

https://youtu.be/ad_RVDaZP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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