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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이태리 Italy

베니스 여행과 가면축제

SaintShin 2022. 10. 10. 01:58

97년 2월 동료들과 업무상의 출장으로 들른 베니스에 때마침 가면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베니스의 가면축제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매우 운이 좋았던 여행이었다.

 

물위에 떠있는 도시인 베니스를 지탱할 나무 기둥을 바다에 세우는 모습

 

5세기경 베네치아 초기 정착민들은 토르첼로, 이에솔로, 말라모코 같은 섬에 살았다. 그러나 이 지역은 습지대여서 땅이 진흙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반이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8세기 후반, 랑고바르드족을 피하기 위한 피난민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정주인구가 늘어나자 도시 거주인구를 늘리기 위해 단단한 기초 위에 중층 건물을 세우고 도시면적 자체를 늘려야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9세기 초반 프랑크군을 피해 말라모코를 포기한 베네치아인들은 이후 118개의 섬이 운하와 다리로 연결된 거대한 도시인 '베네치아'가 세워지게될 리알토로 근거지를 옮겨 생활하기 시작하는데, 당시에는 그저 수 많은 작은 진흙 섬이 있던 곳이었다. 사실 섬이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물 위로 살짝 드러난 퇴적층으로 바다 가운데 개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흔히들 베네치아의 건설을 간척이라고 표현하는데, 공학적으로 간척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영구적인 수상가옥 건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베네치아인들은 개펄에 통나무를 촘촘히 깊이 박아 넣었다. 그리고 나무로 된 기단을 그 위에 얹고, 그 위에 다시 돌을 얹어 건물을 지었다.

 

유랍선을 타고 베니스 운하를 건너다.

 

레알토 다리
레알토다리
레일토 다리 앞에서
바다에서 바로본 산마르코광장
산 마르코광장
산 마르코 대성당

 

산 마르코대성당의 전망대에 올라 광장을 배경으로
산마르코 대성당 안에 있는 말 조각

 

 

베네치아 사육제(이탈리아어Carnevale di Venezia)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축제로,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재의 수요일 전 날까지 10일 동안 열린다.

사육제는 전 세계 가톨릭 국가들을 중심으로 성대하게 펼쳐지는 그리스도교 축제로 부활절을 기준으로 축제 시작일이 매년 바뀌며, 보통 1월 말에서 2월 사이에 시작해 사순절 전날(Mardi Gras: 마르디 그라, 참회의 화요일)에 끝난다.

현재 이탈리아 최대 축제이자 브라질 리우 카니발, 프랑스 니스 카니발과 함께 세계3대 사육제로 뽑힌다.

 

우리의 베니스 방문 시기가 운좋게도 딱 그 때였다.

그래서 가면을 쓴 축제 참여자들과 사진도 같이 찍을 수 있었다.

 

출장동료들과 가면축제에 참여한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베니스 가면축제에 사용되는 가면들의 모형 선물

 

 

베네치아 사육제는 가면과 더불어 그 의상 때문에 가면 축제라고 불린다. 화려한 가면과 옷을 차려 입고 베네치아 곳곳을 누비며 광장을 가득 메운 베네치아 시민들과 관광객은 베네치아 사육제 자체를 상징한다.

 

울리히 쿤 하인은 베네치아 사육의 분위기에 대하여 "베네치아 사육제의 독특한 분위기는 무엇보다도 환상적인 의상에서 나오는데, 그 화려함은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화를 의식적으로 암시 하는 것이기도 하다" 라고 평가하였다. 

 

축제 기간에는 산 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베네치아 전역에서 가면축제, 가장행렬, 연극 공연, 불꽃 축제,민속오락 등이 열리며 사람들은 사육제의 떠들썩한 가장 무도회의 익명속에 영혼의 해방을 경험하게 된다.

 

베네치아 사육제를 대표하는 행사는 축제 기간의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아름다운 가면과 의상 경연대회이다. 이 대회에서는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면 및 의상과 더불어 새롭게 만들어진 가면과 의상이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이 이루어진다. 시민들 또한 옛 전통 의상을 입고 가면을 쓰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과거로의 여행을 즐긴다. 

 

현재 베네치아 사육제는 약 300만 명의 방문객과 함께하는 대규모 축제이며 세계 10대 축제로 뽑히는 세계인의 축제가 되었다.

 

축제의 유래

베네치아 사육제에 대해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베네치아의 비탈레 팔리에르(Vitale Falier) 총독의 재임기였던 1092년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베네치아 사육제는 베네치아 공화국(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이 1162년 아퀼레이아(Aquileia)와의 분란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벌어진 축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아퀼레이아의 대주교는 베네치아 공화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프리울리와 힘을 합쳐 그라도의 영토 분쟁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대주교는 베네치아 군대가 파도바와 전쟁을 치르는 사이에 베네치아를 공격했다가 패한 뒤, 열두 영주와 함께 베네치아로 끌려와 매년 공물을 바치기로 약속하고 나서야 풀려났다. 베네치아인들은 아퀼레이아 대주교에 대한 승리를 기뻐하며 산 마르코 광장에 모여 춤을 추며 축제를 벌였고, 공물로 바쳐진 소 1마리와 돼지 12마리를 관중이 보는 앞에서 도살했다. 이로부터 매년 아퀼레이아 대주교가 바친 공물을 도살하며 축제를 벌이는 전통이 시작됐다.

 

가면 축제의 의미

유럽 중세시기에는 지배계급(영주와 성직귀족)과 가난하고 착취당하던 피지배층(농노)의 구분이 명확하였다. 그러나 사육제 기간 동안에는 가면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사람들의 신분과 성별, 사회계급이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았다.

따라서 평민들은 잠시동안이라도 계급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함께 어울리면서 흥분과 기쁨을 만끽하고 심리적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베네치아 사육제 기간 동안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무도회가 열렸으며, 가면 복장을 한 귀족들과 평민들이 뒤섞이어 매우 즐겁게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사육제는 평소에 쌓였던 불만을 해소해주는 장치이기도 했는데. 사육제는 항상 그래왔듯이 그 기간중 우리로 하여금 권위를 조롱하고 비웃을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 오늘날도 변장을 통해서 이탈리아와 세계의 정치적 사건들을 풍자하는 것은 사육제의 단골 메뉴이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잠시나마 긴장을 해소하게 함으로써 법과 질서가 정말로 위험하게 되는 것을 방지해주는 안전 밸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육제의 측면 때문에 지배계급은 사육제를 이해심을 가지고 방관하였다.

 

긴 부리가있는 메디코 델라 페스테는 본래 질병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17세기 프랑스 의사 '샤를 드 롬'에 의해 고안된 가면이다.
모레타, 세르베타 무타 (servetta muta)는 귀족 여성들이 쓰던 끈이 없는 검정 벨벳 타원형 가면으로 넓은 눈구멍이 있고 입부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